미 전역에 새로운 인풀루엔자가 유행하고, 몇년전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했듯 독감으로 인한 영유아 사망자와 환자들이 수천명이 달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문득 작년 이맘때쯤, 40도가 넘는 고열로 세브란스 응급실을 이틀 연속 전전했던 기억이 떠올라 이곳에 이사오고 결국 4년만에 독감예방 백신을 아이와 함께 맞았다.
유아들도 맞는 백신인데 하는 안일한 생각과 어쩌면 작년에 앓았던 고열이 신종인플루엔자인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아마도 한번 앓았으면 백신도 괜찮을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토요일 오전 백신을 맞혔던것 같다.
결국 그게 사단이 났다.
토요일 예방접종 후 하루내 아이는 몸이 축 늘어져 앉지도 못하고 잠을 자려했고 밤이 되자 혹시나 하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열이 나기 시작했고 새벽녘부터 시작된 발작은 1시간 간격, 40분 간격, 결국엔 7분 간격으로 경련을 했다.
일요일 당직근무중인 그에게 연락을 취하니 교회행사 중이라 빠져나올 수 없어 응급실 갈 준비를 해놓고 그를 기다렸다.
10시 반이 넘어 그가 왔다.
근무중이라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하는 그를 대신해 작은 아이가 동행을 했고,
도착한 응급실에서 여느때처럼 정맥을 잡고 주사약물을 투여하고 피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경련은 쉽게 잡히지 않았고 짧은 시간동안 정맥으로 여섯개의 항경련제가 투여됐다.
많은 약물 탓에 혈압은 84-40으로 내려갔고 정맥으로 아주 빠르게 0.9%의 나트륨을 투여한다.
피속의 나트륨 수치가 정상수치보다 조금만 낮아도 경련이 잘 멈추지 않았기에 피검사중 나트륨 수치를 제일 먼저 확인했다. 역시 정상수치보다 약간 낮다.
전해질이 조금만 부족해도 아주 얇은 유리같은 뇌는 쉽게 균열이 간다.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가고 조금만 컨디션이 안좋아도 마찬가지다.
오후 3시경, 두시간정도 경련이 멈춘걸 확인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그는 우릴 내려놓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응급실에 오래 있으면 다른 환자로부터의 감염 위험도 있고해서 어지간하면 다시 응급실을 가더라도 오래 있지 않는다는게 우리의 원칙이 된것 같다.
항생제와 감기약도 처방받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다시 깊게 잠에 빠져들더니 다시 경련을 일으킨다. 일순, 절망감과 왜 백신을 맞혔을까 하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제발......
억지로 아이를 깨우고 지켜보기로 했다. 시간이 더 경과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또다시 응급실을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엉켜 아이를 붙들고 앉았다.
다행히 경련은 멈추었고 앉아있기도 힘든 아이를 한팔로 안고 데운 우유와 죽을 한숟갈 떠먹였다.
하루내 약물만 쏟아부었으니 뭐라도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해야했다.
그렇게 아이는 몇숟가락을 간신히 받아먹더니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밤이 되자 다시 열이 나기 시작한다.
파우더로 처방받은 타이레놀을 먹이고 미지근한 수건으로 머리와 몸을 닦아냈다.
한시간이 지나도 열이 좀체로 내려가지 않아 다시 캐롤시럽을 먹이고 한시간 뒤 다시 해열제를 먹였다. 손발은 여전히 차고 머리와 몸은 뜨거웠다.
새벽2시, 항생제를 다시 먹이고 손발을 내내 주물렀고 조금씩 손과 발에 온기가 돌아왔다.
그렇게 밤을 세우고 6시 30분, 작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7시경 잠깐 눈을 부쳤다.
아침 9시, 자는 아이를 흔들어 기대어 안고 따뜻한 우유 한잔과 죽을 조금 먹였다.
열도 내렸고 한 이삼일 지나면 기운을 차릴것이다.
결국 아이에게 백신은 위험한 인자였음을 온몸으로 깨달은 날들이었다. 바보같은 내 판단으로 큰 사고를 친 셈이다.
아이는 아직도 몸이 축 늘어져 있다.
나역시 힘에 부친다. 나보다 덩치가 커져버린 아이를 들었다 놓았다 해야하는 탓에 아픈 허리를 진통제로 외면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만하길.
다시는 백신을 접종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