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고 지는 봄날에 이름도 모르는 어떤 아가가 세상을 떠났단다.
꽃이 피는걸 채 두해도 못보고 떠났단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그 아가는 한줌의 흙이 되어 저 세상으로 돌아갔겠지.
죽어서는 갈 수 없는 곳과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곳의 경계는 목숨이라는 이름표
나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그 이름표를 아직 달고 있을 뿐이다.
110여일을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중환자실 앞에서 보낸 그날들
참으로 무수한 죽음을 목도했었던 날들이 있었다.
백일을 갓 지낸 아가부터 백혈병을 앓던 일곱살 윤서, 이제 곧 중학교에 들어간다던 종현이, 어느 외국인의 남편.
어느 누구의 아내와 여동생, 딸, 아들들...
그곳에서 살아 남은 몇몇의 사람들은 지금도 기나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희망이라는 보이지도 않는 끈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중이다.
그리고 세브란스 B중환자실 앞에는 오늘도 어떤 이가 목숨이라는 명찰을 떼어놓고 저 세상으로 이사를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무수한 죽음을 목도하며 어떤 날은 가슴에 비수가 꽂힌듯 오열도 하고 통곡도 했었지만
결국엔 오직 허망함 만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던것 같다.
아등바등 살아서 무얼할것인가
우린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또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부귀영화도 하등 필요치 않고 그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늘 다가올 죽음을 예비하며 산다.
꽃이 피는 봄날에
혹은 꽃이 지는 이 봄날에
그리하여 언제든 나는 저 세상으로 이사를 할 준비를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