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슬픔이란 감정과 처음으로 대면한것은 내 나이 열다섯살 즈음이었다.
어떠한 특별한 사건과 마주한것도 아니었고 사춘기적 감성이 무르익을 무렵 어느날 갑자기 나를 덮쳤다. 
때맞춰 찾아온 만성신장염이란 진단은 체육 시간마다 교실에서 혼자 남겨진 나에게 실컷 울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몸서리를 치며 숨죽여 어깨를 떨었다.
그리하여 홀로 저물녘 바다를 서성대고, 비내리는 새벽 거리를 우산도 없이 정처없이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슬픔의 거리를 일년 가까이 헤매고 다닌 후에야 그 까닭모를 슬픔이 잠잠해졌다. 듣는 음악들도 죄다 슬픔이었고 읽고 필사했던 시들도 슬픔이란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왈가닥 같았던 나였기에 벗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왔지만 처음부터 까닭이 없었으니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슬픔은 그렇게 어느날 내게로 찾아와서 꼬박 일년을 앓고서야 예전의 나로 돌아올 수 있었던것 같다. 그렇게 나는 사춘기를 슬픔이란 놈에게 나를 온전히 내어주었다.
지금도 왜 그때 그리 슬펐었는지 나는 까닭을 알지 못하지만 세상속에 던져진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첫 걸음을 그 슬픔을 통해 배운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 후론 슬픈 눈동자를 한 이들을 금방 알아채곤 했는데 마치 같은 병을 앓고 난 이들끼리 그 생리를 쉽게 알아보는 것처럼 마음이 먼저 동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가 짊어진 슬픔의 무게를 온전히 가늠하진 못하기에 나는 다만 그 슬픔을 지켜보고 마음 한켠을 내어줄뿐이다. 
그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말해줄 순 없다. 슬픈 만큼 아파하고 슬퍼해야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를 더한 슬픔을 견뎌 낼 면역력도 의지도 가질 수 있는거니까.

작가는 슬픔을 글로 풀어 삶을 얘기하고, 나는 그 슬픔을 읽으며 '내 슬픔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나(작가의 글을 인용함)'를 한발짝 물러서서 바라다본다.
슬픈 그 길 위에 나는 아직 서 있다. 
그 길이 어디로 나아갈지 모르지만 길이 있으니 그렇게 견디며 또 걸어갈것이다.

-- 남덕현님의 산문집 <슬픔을 권함>을 읽는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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